책ㅣ구의 증명ㅣ최진영 한국 장편 소설ㅣ줄거리, 독후감

역시 해피엔딩은 없구나. 책을 덮으며 내가 중얼거렸던 말이었어.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실 주인공들의 이야기.

공의 증명

“만약 네가 먼저 죽으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중학생 딸이 어디선가 보고 먼저 읽고 싶다며 구입한 책이었다. 웹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피폐물 소설도 많이 읽는다고 말했다.

사람이 시체를 먹는다고? ‘네 췌장 먹고 싶다’ 이런 부류 얘기인가? 이렇게 물어봤는데요. “아니, 구의 증명 이야기 중에서는 실제로 먹어”라고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그리고 그 시체를 먹음으로써 그 사람을 기억하고 증명하는 끔찍할 정도로 깊은 사랑과 무서울 정도의 독특한 애도를 그린 소설인데요.

이 이야기 속에는 이 아이들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끔찍한 현실도 함께 있다. 저자 : 최진영 2006년 실천문학에 등단하였다. 비상문 홈 스위트 홈 해지는 곳으로 등의 작품이 있다.

할아버지와 살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이모와 살게 된 댐과 아주 가난한 부모님과 살던 구의 이야기. 소설 아홉의 증명은 구와 담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 같은 반 인연으로 처음부터 함께했던 연인.

너 여기 왜 있어?너는 여기 왜 있어? 구와 내가 서로 물었다. 그 질문에는 의문보다는 기쁨이 묻어났다. 27p 단 음식이 자꾸 먹고 싶었지만 둘 다 군것질도 못할 정도로 돈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과담네 집에서 흰 설탕을 꺼내 먹었는데 이모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했다. 그런 소문이 난무하는 얼마인데도 구와 나는 여전히 따라다닌다. 아이들이 우리를 더럽다고 놀릴 때는 매우 화가 났지만 그것이 구의 손을 놓을 이유가 되지 못했다. 40p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사춘기 아이들의 감정 변화가 독특한 묘사 속에서 절실히 느껴지기도 하고 살아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한 구의 증명소설이다.매일 밤 일기를 쓰듯 댐의 집에 갔다. 문 앞에 서서 정성껏 노래했다. 골목에 발로 쓰는 나의 일기는 온통 담장으로 가득 찼다. 53p 10대 중반을 넘기면서 ‘구’와 ‘담’은 사랑을 하고 ‘구’가 공장에서 일하면서 이들은 어린 ‘노마’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다 ‘노마’가 사고를 당하고 이들은 죽음을 목격하고 같은 마음인 이들은 서로를 피한다.

처음 만났을 때 구와 나는 다른 조각에 빠져 있었다. 함께 있던 어느 날 구와 나 사이에 끈질기고 끈질긴 감정이 한 방울 떨어졌다.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 있을 거야. 같이 없어도 같이 있을 거야. 그걸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84p

‘쿠’는 다른 여자를 만나거나 군대에 가버린다. 제대 후 구의 부모는 사라졌고 구는 자연스럽게 부모의 사채 빚을 떠안게 된다. 그래도 그 둘은 함께하게 된다. 사채업자에게 쫓겨 도망갔다가 다시 도망치면서. 처음부터 결말이 나 있는 소설구의 증명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몸처럼 이리저리 뒤척이던 걱정과 바람. 쇄골까지 내려온 공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졌다. 손에 든 그것을 물끄러미 보았다. 버릴 수 없어서 돌돌 말아서 입에 넣고 꿀꺽 삼켰다. 13p

어려서부터 생활에 지친 구는 그래도 처음에는 괜찮다는 말을 자주 했다. 담이 좋다는 말을 금지어로 했을 정도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빚투성이의 삶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현실에 ‘쿠’도 점점 지쳐간다. 누나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등신병신 천치 같았다. 다 네가 잘 되라고 하는 거야. 누나는 말했다. 하지만 내 귀에는 잘하라는 말이 아니라 나가라는 소리로 들렸다. 나는 가망이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106p 연인의 시체를 먹는다는 괴기라고 할 정도로 끔찍하고 또 불편한 사랑 이야기다. 중학생 딸은 왠지 섬뜩하다며 책을 읽었고, 좀 더 어린 중학생 아들은 읽고 그만두었다.그러나 그중에는 처절한 현실도 있다. 내 눈에는 자꾸 그런 부분도 밟혔어.

길가에서 구는 죽고 댐은 그런 구를 자주 데려와 씻고 소독용 알코올로 몸 전체를 닦는다. 왜 사망신고를 해야 하는가. 뭘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쿠가 죽었다고 내 이름으로 그걸 증명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어. 여기 내 눈앞에 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몸이 있는데. 아무도 모를 거야. 38p 이런 세상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그들은 과연 이 말도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외롭고 암울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사춘기 혹은 그런 내 시간 속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들의 우울한 현실에 깊이 빠져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담은 할아버지와 고모를 보내 노아의 죽음도 목격했고, 마지막에는 구까지 바래다줘야 했다. 죽은 연인을 먹는다는 괴기하고 무서운 설정이 있지만 상실감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소설 ‘아홉의 증명’이다.